006 _ 카우치서핑 호스트와 만남, 그리고 이루크츠크(2017.09.08~10)

2019. 5. 29. 18:27두번째, 첫 발을 내딛다

이별 아닌 이별, 그리고 그들과의 첫 만남

여행 준비며 떠나기 전 지인들을 만나고 다니다 보니 어느새 출발하는 날이 다가왔다. 나는 회사 때문에 부천에 살고 있었고 여행을 떠나기 위해선 부천 집을 정리해야 했다. 그런데 내 지인들은 전부 수도권에 있었고 난 떠나기 전 지인들과 시간을 보내고 싶었고, 부모님과의  얘기 끝에 내가 여행을 가는 날 집을 빼기로 했다. 부천 집을 정리하고 짐을 본가로 가지고 가기 위해 부모님이 올라오신 김에 그 자리에서 부모님과 1년간의 이별을 예정하며 인사를 할 수밖에 없었다.

 

가족들이나 지인들에게는 내가 불안해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 노력했지만, 사실 난 너무 불안하고 출발하는 날이 다가올수록 그 불안감은 점점 커지기만 했었다. 그중에 제일 큰 불안감은 러시아에서의 첫 카우치서핑이었다. 뉴스나 기사들로 접했던 러시아는 아시아인에 대해 안 좋은 인식이 있고, 인종차별이 심한 나라라는 이야기들 뿐이었다. 그런데다가 날 초대해준 그들은 카우치서핑 호스트 경험이 처음이었고, 나 또한 처음이었기에 불안하다 못해 두려운 느낌마저 들기도 했었다.

 

부모님과 인사를 하고 공항으로 가는 길, 친한 동생 하나가 공항까지 따라와 줘서 조금은 덜 힘들었었다. 그렇게 내 여행의 시작, 러시아로 향하는 비행기를 타고 낯선 땅에 도착했다. 나의 첫 목적지 이르쿠츠크 공항은 대전에 있는 버스터미널보다 작아 보일 정도의 규모로 매우 작았다. 그 공항을 나와 밖으로 나오니, 날 초대했던 호스트들이 내 이름을 들고 딱 서있었다. 낯선 땅에서 낯선 이 가 내 이름을 들고 공항에서 마중을 나와 있는 모습을 보고 난 조금은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었다.

 

스타스(Stas)와의 첫만남!

원래 초대했던 친구는 나와 나이가 같았고, 그의 친구가 놀러 왔기에 같이 나왔다고 했다. 그런데 공교롭게 그들은 이름이 같았다. 그렇게 스타스들과 만났다. 그런데 그들은 공항까지 마중 나오며 차가 없었고, 택시를 타고 왔다고 했다. 난 짐을 갖고 다시 택시를 타고 스타스의 집으로 가는 길 환영 파티를 해준다며 맥주와 안주거리를 사 가자고 했다. 가다가 한 상가에 도착했고 맥주를 사러 같이 가자고 하는데 난 순간 고민했다.

 

'가방을 놓고 가도 되나? 돈이며 뭐 다 들어있는데... 혹시 택시기사가 도망가면 어떡하지?'

 

혼자 생각에 빠져 주저하고 있는데 스타스들이 그냥 놓고 오라고, 괜찮다고. 사실 택시를 타고 가면서도 나에게는 이 스타스들마저도 두려운 존재였다.

 

'혹시 이들이 날 감금하고 인신매매하면 어떻게 하지?'

 

등등 별의별 생각을 다 했었던 것 같다.

 

페트병에 맥주를 담아서 파는 상가

하지만 다행히도 별일 없이 맥주와 안주를 사서 집으로 왔다. 원래 카우치서핑이란 집의 소파를 여행자에게 잠자리로 제공하는 시스템인데, 스타스는 나에게 방 하나를 내주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따로 룸 렌트를 하는 아파트였고 스타스는 다른 집에 살고 있었다. 그리고 나에게 제공한 방은 스타스의 동생이 쓰던 방이었는데 지금은 다른 곳에 가있어 방이 비어있다고 했다.

난 그렇게 카우치서핑이었지만 방을 통째로 쓰게 됐다.

 

조그만하지만 아담한 방

짐을 풀고 스타스들과 맥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눴다. 난 이런저런 걱정과 첫 나라에 대한 긴장감에 피곤해있었는데 이 친구들은 외국인과 서로 유창하지도 않은 영어로의 대화를 나누는 게 좋았는지 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거기에 10도가 넘어가는 맥주를 마시니 내 눈은 점점 감겨오기 시작했고, 그 상태에서도 꽤 오랜 시간 대화를 나눈 후에 서야 이들은 푹 쉬라며 떠났다. 내 세계일주의 첫날이 이렇게 끝이 났다.

 

소박한 환영파티!

너무 짧았던 이르쿠츠크에서의 시간들

첫날밤 이들은 떠나면서 다음날 아침에 데리러 온다고 했고 큰 스타스는 간단하게 밥을 해준다며 파스타를 삶기 시작했다. 그의 요리과정은 충격이었다. 러시아 음식이 맛이 없다고 듣기는 했지만 파스타 면과 소시지를 삶고, 올리브 오일도 아닌 오일과 소금, 후추를 삶은 면위에 뿌려 비비더니 완성이라고 하는 게 아닌가?!

 

그래도 자취를 하며 요리 좀 해본 나에겐 이건 충격의 음식이었고 그 맛 또한 너무 담백했다. 아무런 맛이 느껴지지 않고 오일의 느끼함에 난 차마 다 먹지 못하고, 원래 아침을 잘 안 먹는다며 남겨버렸다.

 

Sorry!!! Stas!

 

밥을 먹고 나서 또다시 택시를 불러 우리는 시내 구경을 나왔다.

 

충격의 아침식사

난 이르쿠츠크에 대해 아무것도 조사하지 않고 여행을 왔었고, 이들은 이곳저곳 시내 구경을 시켜줬다. 사실 아무런 정보도 없었기에 그냥 구경하는 거 이상은 없었다. 원래 크지 않은 우리 도시에 누군가 놀러온다면 보여줄 게 없는 게 현실이기는 한 거 같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이들 덕택에 편안하게 이르쿠츠크 구경을 하고 스타스의 집에서 음식을 준비했다며 가기로 했다.

 

집에 도착하니 스타스의 예쁜 와이프는 맛있는 음식을 차려놨고 내가 갖고 온 소주와 음식들을 먹었다. 확실히 스타스가 해준 음식보다는 맛있었다. 함께 저녁식사를 하고 힘겹게 힘겹게 대화를 나누다 스타스는 또다시 택시를 타고 내가 머물 집으로 데려주고는 떠났다. 다음날은 내가 아침 일찍 알혼섬으로 가는 날이기에 아침일찍 데리러 온다는 말과 함께 그들은 집으로 돌아갔다.

 

스타스의 집에서 본 저녁노을

지금 생각해보면 내 여행의 첫 번째 도시, 첫번째 카우치 서핑이었기에 워낙 경황이 없어 그들에게 뭐 하나 해주지 못하고 지나갔던 것 같다. 지금 간다면 이르쿠츠크에서만 3~4일은 있었을 텐데, 크지 않은 도시라고 해도 그냥저냥 지나가 버린 게 너무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

하루 이틀 더 머물며 그들에게 한식도 해줄 수 있었을 것이고, 그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한 게 너무 아쉽다.